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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큐티설교(로마서 2장 1-16절) 전적타락, 전적무능
| 설교일 | 2018-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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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1-16절 전적타락, 전적무능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기만족만을 위해 돌아가는 기계
마크 트웨인(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책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돌아가는 기계와 같다.’
기계는 감정이나 느낌, 생각이 없습니다. 스위치 버튼을 누르면 그 설계한 방식그대로 작동합니다.
인간은 감정 생각 느낌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기만족만을 위해 기계와 같이 돌아간다고 말한 마크 트웨인의 말은 성경과 더불어 오직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이런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고, 더 나은 나를 위해, 더 성공한 나를 위해, 더 멋진 나를 위해서만 질문을 하게 합니다. 책, 미디어, 언론, 교육 등 모든 관심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아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잘못된 질문을 던지기에 열심히 정답을 찾기 위해 살고, 또 정답을 찾았지만 잘못된 질문으로 시작 되었기에 삶은 여전히 어긋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올바른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전갈과 개구리 예화
개구리와 전갈이 있었습니다. 전갈이 연못을 건너고 싶은데 전갈은 사막에 사는 곤충이기 때문에 헤엄쳐 건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개구리 등에 업혀 가면 되겠구나 하고 개구리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개구리는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개구리는 “내가 선행을 베푸는 건 좋지만 목숨을 걸고 가고 싶진 않다.”라고 전갈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갈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너를 쏘면 연못에 빠져 너도 죽고 나도 죽는데 내가 설마 너를 쏘겠니.”
그러자 개구리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전갈을 업고 연못을 안 건너가면 분명 전갈은 나를 죽일 거야. 그럴 바엔 전갈을 업고 연못을 건너 주자.’
그리고 나서 개구리는 전갈을 믿고 전갈을 등에 업고 연못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연못 중간쯤 갔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쏘았습니다.
죽어 가는 개구리가 전갈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업고 연못을 건너 주면 안 죽인다더니 전갈, 너 왜 나를 쏘았니?”
전갈이 대답했습니다.
“침을 쏘는 것은 내 본능이야. 나는 내 본능대로 행동했을 뿐이야.”
전갈이 자기를 도와준 개구리를 쏜 것은 어린 시절 부모 전갈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서, 집이 가난하여 멸시를 당해서가 아니라 전갈이 가진 쏘는 본능 때문입니다.
이것이 전적 타락한 죄인인 우리 인간들의 실존입니다.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가장 큰 문제는 죄인 된 상태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죄인 된 인간에게 성경이 제시하는 유일한 치료는 심리 치료가 아니라 죄에 대한 ‘회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인간은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는 비유하자면 단순히 개구리를 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수준의 전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개구리에 업혀 연못을 건너기 위해 애를 쓰는 ‘거듭난’ 전갈로 탈바꿈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구원은 이와 같이 인간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는 대단한 것이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로 자신들이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그러기에 복음의 힘과 능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기준이 되어 언제나 남을 판단 정죄 하였습니다.
1절 말씀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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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
자신들은 율법을 준수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적 타락한 죄인인 인간은 그 누구라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고,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어떤 선도 행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력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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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무능력 1.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다. 2. 인간은 선을 깨달을 수 없다. 3. 인간은 선을 바랄 수 없다. |
전적으로 무능력 하다는 말은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그 어떤 선도 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선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완악함이 있습니다.
그 연약함과 완악함 때문에 머리로는 행복의 원리를 알면서도 그대로 살지 않고, 살려고 하지도 않으며, 또 살려고 해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이런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3, 5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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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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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
즉,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죄의 본성만 가지고 있어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며, 선을 행할 능력도 없는 전적으로 무능력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힘과 노력과 방법으로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율법을 지킬 수 있다라고 착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 유대인들, 이방인들을 정죄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이 오히려 우리를 심판하는 우리를 겨눈 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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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나는 교회 다닌지 오래 되었고, 새벽 기도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고, 직분도 받았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떻게 저것도 모를 수 있지? 어떻게 저렇게 살아가지? 우리들의 이런 판단은 다시 우리들에게 진노의 날, 심판으로 우리에게 다가 옴을 기억하는 이 새벽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어떻게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안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을 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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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
지금 당장 심판 받아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자로 인해, 하나님의 용납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으로 인해 그 심판이 지연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용납하심에 대한 단어를 깊이 살펴보면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용납하심
용납하심의 원어의 뜻은 ‘다시 붙잡다, 다시 소유하다’는 뜻으로 이것은 어떤 고통이나 불이익까지도 감수하면서 자신의 소유를 잃지 않기 위해 강력히 붙잡는 행위를 묘사합니다.
여기에서 ‘견디다’, ‘참다’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파생되었으며 또 ‘사랑으로 수용하다’
즉, 용납하다는 의미로도 확대 되었습니다.
이 내용들을 정리하면 ‘용납하셨다’는 것은 자신의 소유를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견디고 참고 수용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모습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전적으로 무능력한 죄인인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 박아 죽이시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참고 견디고 수용하신 하나님의 용납하심으로 우리들 또한 타인을 그렇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전적으로 무능력한 죄인이기에 타인 또한 그럴 수 있음을 알고 이해하고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판단할 근거인 율법이 없어 판단하지 않는 이방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14, 15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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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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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그들의 본성, 양심이 증거가 되어 율법의 행위를 나타 내 보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양심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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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란 인간의 마음 내부에서 자신의 행위를 살펴서 선악에 대해 판단케 하는 내면의 도덕적 규범이라는 것입니다. |
율법이 없어 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지만, 각자 자신의 양심이 도덕적 규범이 되어 율법의 행위로서 이방인들 또한 심판의 대상에서 결코 제외 될 수 없음을 명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율법이 있어 그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이라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몇 가지를 지킨다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오히려 자기의 죄를 있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방인이라도, 율법이 없어 죄의 기준이 없더라도 인간에게 심겨진 본성, 양심이 증거가 되어 우리가 죄인임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즉,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인 인간, 전적으로 무능력하여 선을 행할 수 없는 죄인인 인간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은 바울이 쓴 로마서를 통해 그 어떠한 노력과 방법과 인간의 의를 동원하더라도 전적으로 타락하고 전적으로 무능력한 우리에게서 구원이 날 수 없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 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분을 바라보고, 그 보혈의 피를 의지하는 길 밖에 없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가 작정하고 이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열과 성을 다해 예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몸과 시간 재정을 닳아 없애가며 헌신하고 봉사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이 모든 것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며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라면 다시 한 번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임을,
우리는 전적으로 무능한 죄인임을.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십자가의 보혈만이,
전적타락과 전적무능에서 건져 낼 수 있음을 기억하며
그 믿음 충만하게 부어 달라고 기도하는 이 새벽이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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