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11월 11일 큐티설교(예레미야 38:1-13) 죽이는 손, 살리는 손

11월 11일 큐티설교(예레미야 38:1-13) 죽이는 손, 살리는 손
[주일] 11월 11일 큐티설교(예레미야 38:1-13) 죽이는 손, 살리는 손
2018-11-12 08:47:22
강주헌
조회수   1461
설교일 2018-11-11

11.11 큐티설교(예레미야 38:1-13) 죽이는 손, 살리는 손

여러분 낯선 사람을 만나면 무엇을 제일 먼저 보십니까?
밖으로 보이는 외모에 우리는 먼저 눈이 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 사람이지요.
어떤 됨됨이를 가진 사람인지, 그의 본심이 무엇인지 잘 헤아려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4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째 선지자 예레미야, 
둘째 예레미야를 고소한 4명사람들, 스바댜, 그다랴, 유갈, 바스훌. 
셋째 시드기야 왕, 
그리고 마지막 넷째 구스 출신의 내시 에벳멜렉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38:1-13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렘38:1-3 함께 읽겠습니다.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스바댜, 그다랴, 유갈, 바스훌 이 네 사람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은 그가 처음 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큐티 묵상을 통해 이미 여러번 들은 말입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이 구원받지는 못하더라도, 그러나 백성들만이라도 구하기 위해,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알려주신 살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성에 머물러 있는다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게 된다, 그러나 바벨론에 항복하는 사람은 살게 될 것이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면 상으로 전리품을 얻는 것처럼, 그렇게 자기 목숨을 상으로 받게 된다" 라고 백성에게 말하였습니다. 
갈대인들의 자비에 스스로를 맡기는 길만이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우리가 알다시피 이 얘기를 처음 하는게 아닙니다. 계속 왕과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스바댜, 그다랴, 유갈, 바스훌 이 네 사람은 예레미야 이 선지자가 어떻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 분노하였습니다.
어떻게 우리 나라가 망하게 될 거라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시드기야 왕에게 예레미야를 고소하였습니다.

어러분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백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전하였습니다. 바른 소리를 했지만 그러나 그러던 중에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일들은 많이 있습니다.
정당한 일, 옳은 일을 했지만 비난을 당하거나 누명을 쓰고 나쁜 사람으로 매도되는 경우들 말입니다.
우리도 그런 일 당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비록 잠시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구원하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 뒷부분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예레미야를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백성을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할렐루야


이제 이 4명의 고소자들은 왜 예레미야를 고소했을까요?
이들은 상당히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로 보여집니다.

렘38:4절 말씀 읽겠습니다.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어떻게 임금의 녹을 먹는 선지자가 
나라의 평화, 백성의 안위를 위해서 말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나라는 망할 것이다. 목숨을 구하려면 갈대아인에게 항복해야 된다 공공연하고 말하고 돌아다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우리 나라가 왜 망하느냐?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이곳에 있는데 어떻게 망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이런 말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생각, 선민의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시며,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권능의 손길로 원수들을 무찌르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의 자만심, 어리석은 자기 믿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말을 하는 예레미야는 죽어 없어져야 된다 생각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예레미야를 고소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속마음은 사실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상당히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정의롭고 백성을 위하는 선한 사람인 것 같지만 그러나 실상은 자기의 사적인 이익, 자기 욕심 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자기가 정복한 나라들의 백성에게는 예전 앗수르와는 다르게 굉장히 유화적이고 온건한 대우를 하였습니다. 조공을 받으면서 그들을 평화롭게 살도록 했지요. 그러나 피지배국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왕과 관리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을 가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바벨론에 항복할 때 자기들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말이에요.
그래서 이들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핑계로써 자기에게 위협이되는 세력을 제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의로운 자를 억울하게 고소하고,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또는 자기의 불명예, 불이익을 감추기 위해서 공적인 것을 핑계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바른말 옳은 말 하는 사람을 오히려 누명을 씌워서 그를 좇아내고, 억압하는 악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요즘도 있지요? 정치가들 중에 특히 많이 있습니다. 백성을 위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자기 사리사욕만 좇고, 세력을 규합해서 자기 편 만들어 영원토록 권세를 누리려고 하는 악한 자들, 교만한 자들 말입니다.


세번째 시드기야 왕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고소를 듣고서 예레미야를 죽여도 좋다고 허락해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5절 "너희를 거스를 수 없다". 신하들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너희들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뒤에 내시 에벳멜렉이 예레미야가 굶어죽게 내버려두서는 안된다고 하니까, 이젠 또 예레미야를 구해줘도 괜찮다고 말을 바꿉니다.
내일 본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렇게 구출된 예레미야에게 미안하지도 않은지 찾아가서는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시드기야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공의롭게 사용하지 않았고, 남의 눈치나 보면서 이랬다 저랬다 했습니다. 정말 우매한 지도자 입니다.
시드기야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한심합니다.

넷째 내시 에벳멜렉입니다.
그는 위기에 처한 예레미야를 구출해냅니다.

진흙으로 가득 찬 우물같은 웅덩이에 예레미야가 던져진 사실을 알고서 왕에게 찾아가 그를 구하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렘 38: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내시 에벳멜렉이 이렇게 불쌍히 고통 받는 자를 위하여 왕에게 청원하고 있습니다. 에벳멜렉은 구스인으로, 유대인보다도 더 인정과 경외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로마 백부장을 칭찬하신 적이 있었지요. 이방 사람들 중에서 유대인보다 더 깊은 믿음을 가진 이방인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에벳멜렉은 악한 궁정에서 살고 있었고,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평과 경건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에벳멜렉은 시드기야 왕이 재판을 벌이고 있는 바쁜 때인줄 알면서도 그러나 예레미야의 일이 촉박하고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재판하기 위해 ‘베냐민 문에 앉아’ 있던 시드기야 왕에게 즉시 달려갔습니다.

에벳멜렉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불의와 거짓에 앞에 당당히 저항하였던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억울한 자, 약한 자를 위해 변호해주고 그를 구원해내는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11-12절을 보면 에벳멜렉은 약한 자를 지켜주되, 세심하게 보살필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줄을 웅덩이 아래도 던져 넣다가 줄에 맞아서 다칠까봐 줄을 던지지 않고, 조금씩 풀어서 내려준 것을 볼 수 있고, 줄을 잡고 올라오다가 떨어져서 죽거나 다칠까봐 줄로 몸을 감도록 했는데, 그러나 그냥 밧줄을 몸에 대면 줄에 쓸려서 닿은 피부가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헝겊을 같이 준비해서 헝겊을 먼저 몸에 대고 그 위에 줄을 감도록 하여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말 세심하게 배려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죽을 위기에서 구원을 받았고,
그 후 시위대 뜰에서 보호를 받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이 짧은 구절 속에 4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늘 자신을 비춰 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귀한 날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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