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5월 7일 큐티설교 (역대상 9:35-10:14)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

5월 7일 큐티설교 (역대상 9:35-10:14)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
[화요일] 5월 7일 큐티설교 (역대상 9:35-10:14)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
2019-05-10 23:48:39
강주헌
조회수   782
설교일 2019-05-07

역대상 1장 아담에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는 어제 본문, 포로 귀환자 명단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족보를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여 이 땅에 살게 해주신 선민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조상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래 나는 이런 분들의 후손이야 라고 자부심을 갖었을 것입니다.

이 족보를 통해 역대기 저자는 자기들의 대가 끊어지지 않았고,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포로로 살기도 했지만 그러나 순수한 혈통을 지켜왔음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특별히 유다 백성들을 보호하며 지켜주셨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부터 역대기 저자는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드러나게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포로에서 돌아온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범죄한 사울은 망하였지만, 여호와께 순종하여 제사를 잘 드린 다윗과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큰 복을 누릴 수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13 앞 부분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사울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하면서 다윗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상 11: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의 인구 조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대상 21:7)

유다 왕들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겼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역대하 13:18) 같은 표현으로 역대하 16:7; 17:3, 5; 22:7; 25:20; 28:6; 32:25; 33:10, 11; 36:15-17 반복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분을 잘 섬기는 백성은 복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벌을 받습니다. 역대기 성경은 이 사실을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 위에 굳게 서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거역한 사울 왕이 어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상 10:1-2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대상 10: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사울의 계보를 열거한 후에 10장에서는 갑자기 블레셋과의 전쟁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내일 본문 11장에서는 다윗이 어떻게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고, 온 백성에게 인준을 받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에 반해, 사울 왕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고, 오직 그의 비극적인 죽음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도망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그 가운데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들을 죽였다. 사울도 그 전쟁에서 죽었고,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었다.’ 이 끔찍한 사울의 결말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윗처럼 상세하게 이야기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왜 사울이 멸망 받아야 했는지,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사울 가문을 끊으시고 다윗 왕조라는 새로운 가문으로 교체하셨는지에 대해서만 말씀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볼 때 왕국에 있어서 왕조가 바뀌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흔하지 않은 사건은 그 방식은 쿠데타에 의해 새로운 권력자가 선왕을 제거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왕과 왕자들이 전쟁에 나갔다가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매우 희귀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울 왕가가 끊어지고 왕조가 바뀐 사건은 인간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대상 10:13-14 같이 읽겠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의 사인은 자살입니다. 전쟁에 패배하여 자기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자기 자신조차 원수들, 저 할례 받지 못한 오랑케 블레셋 사람들에게 욕을 당하기 싫어서, 그 수치와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자결을 택하였습니다.

사울은 장수답게 명예롭게 죽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원수에게 죽임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기 부하의 손을 통해 죽음을 맞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10:4절 기록하고 있듯이 부하는 그렇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뒤에 자기가 살아 돌아갔을 때, 또는 죽는다 하더라도 왕을 죽인 책임을 받게 될까 두려워서 사울 왕의 명령대로 행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기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전쟁에 패배하여 죽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대기 성경은 말합니다. 전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그가 죽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13-14절 누구에게 범죄했다?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사울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율법을 어기고 무당에게 찾아가 물었다.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셨다”

사울이 전쟁에서 진 것, 그 전쟁에서 죽음을 맞게 된 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이지만 그러나 여호와께서 금하신 일, 헛된 신, 우상들을 쫓아갔기 때문에 멸망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온전히 섬겨야지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수줍음이 많았던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부어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그는 자신의 겸손함을 잃어버리고 오만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 오만함은 하나님을 거역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아말렉을, 블레셋을 수없이 물리쳤던 강력한 왕이지만 그러나 그 승리를 주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생각하지 않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불순종의 동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울은 자신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그들과 가축까지 모두 멸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어기면서 가축들을 취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삼상 15:24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백성이 두려워서 하나님 말씀이 아닌 백성들의 말을 듣고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았던 이유를 삼상 28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서 삼상28: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그래서 두려웠던 사울이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으로 인해 조급해진 사울은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삼상28:7)

또한 오늘 본문에서 사울은 오랑케 블레셋에 의해 수치스런 죽임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했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했고, 사람들로 인해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움이 그의 평생을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왜 생겨납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두려워하는 일,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떄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좋다는게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나요?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에는 그 어떤 크고 두려운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을 때에는 지극히 사소한 일을 만난다 하더라도 이리저리 세상에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진리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을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우리에게 믿음 주시는 분도 하나님 뿐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주님만 바라보시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심으로 어떤 어려운 일, 두려운 일들을 만난다 해도 당당히 걸어가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울은 부끄러움 당할까 두려워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지만,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더욱더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부관참시와 같은 치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대하10:9 블레셋은 자기의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 사울의 머리와 갑옷을 블레셋 온 땅에 보내었으며, 이방 신전과 백성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두려워하면 당하게 되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존재들이 못 됩니다. 오직 주님만 온전히 신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에 죽음을 택한 사울, 대하10:7 두려움으로 인해 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친 그 지역 주민들, 그러나 그 두려움을 극복하여 사울의 수치 당함을 중단시켰던 이들이 오늘 말씀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하 10:11-12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 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죽음을 기뻐하며 축제를 벌이고 있을 때, 그 소식을 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 용사들이 나아가 사울 왕과 왕자들의 시신을 되찾아왔으며 그들을 매장하고 7일간 장례를 치러 주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변방으로 지극히 작은 곳이었습니다. 레위기19장 레위인 첩의 간음 사건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멸족을 당했을 때 베냐민 지파의 대를 잇기 위해서 이스라엘 총회는 야베스 사람들을 다 죽이고서 그 지역의 처녀들만 일부 살려서 베냐민 지파에 주었던 끔찍한 역사도 겪었던 곳입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 때문에 주민이 멸절되는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 그곳이 접경 지역이었던 탓에 사울 집정 초창기 암몬 족속이 침공했을 때, 암몬 군대는 야베스 사람들의 눈을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암몬과 전쟁을 하였고 승리함으로써 야베스 사람들을 구해주었음을 사무엘상 11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집안인 베냐민 지파와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 사이에는 이런 악연과 은혜가 있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도망하였던 본토인들과는 달리, 길르앗야베스 주민들은 자신들을 위해 싸워주었던 사울 왕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사체를 수습해 오는 위험한 일을 감행하였던 것입니다. 길르앗야베스 용사들은 여호와를 의지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죽음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싸웠기 때문에 그들의 헌신을 기리고자 역대기 저자는 사울 왕의 죽음 사건 사이에 이 일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울 왕이 죽음을 맞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대상 10:13)

그러나 그의 죽음의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인은 심리적 두려움 때문이었다. 대적의 칼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그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세상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입니까?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그의 평생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울처럼 세상에서 성공한 것 같아도, 그러나 늘 불안, 염려, 그리고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두려움이라는 근원적인 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결코 두려움에 매여있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말씀에서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울과 달리, 사울에게 은혜를 입은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이 왕에 대한 충성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적진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였기에 두려움을 이겨냈고, 또한 왕의 명예를 지켜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만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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