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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큐티설교(빌립보서 1장 12-26절) 고난 중에도 즐거워 하는 비결
설교일 | 2019-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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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빌립보 지역은 위치가 유럽과 아시아와 바다를 이어주는 곳에 있으면서 자연스레 발전한 도시였습니다.
지하자원으로도 금과 은이 많이 나는 곳이었고, 농사를 짓기에도 비옥한 평지였습니다.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고 여러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여러 지방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를 이룬 거대 도시입니다.
마게도냐의 여러 도시 중에 가장 번성한 도시가 빌립보입니다.
헬라 시대에는 로마가 군사적 전초기지로 사용한 곳으로 군대가 주둔해 있던 도시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마게도냐 지역에서도 최초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빌립보 도시의 특성상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내부에도 여러 파벌이 생겨나고, 서로 생각이 맞지 않고 뜻이 달라 다툼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교회를 안정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안그래도 빌립보교회가 여러 사람들이 여러 목소리를 내고 바울을 대적하는 움직임도 있는 와중에서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교인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분열이 생길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매를 맞고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 힘든 상황입니다.
그곳은 편안한 호텔이 아닙니다.
차디찬 맨 바닥이고, 온갖 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옆에는 매를 맞아 신음흘리는 자들이 누워 있고, 혹은 맞은 매가 심하여 죽은 시체도 간혹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 처형당할지 모를 분위기에 감옥 안은 정말 절망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당장 내일 내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상황입니다.
그런 곳에서 바울은 펜을 들고 편지를 씁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편지에 이렇게 썼을 것입니다.
"힘들어요!" "아파요!" "꺼내주세요!"
그런데 바울은 그 감옥 안에서 빌립보 교회를 걱정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을 안심시키는 말들을 하며 기쁨과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힘든 상황임에도 빌립보 교회를 향해 사랑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울은 자신의 어려운 고난 속에서 그런 말들을 할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로, 고난 속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당한 일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낮선 말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실라와 함께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사건을 계기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이 어떻게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될 수 있냐고 다른 교회들은 반문할 수 있지만,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감옥에 들어간 것으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지금 바울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고난으로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복음은 전파되는 것입니다.
아니 고난이야말로 복음을 전파하는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로, 바울이 담대히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고난이 끝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이 말씀은 바울 자신이 풀려 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성도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분명 기도하게 됩니다.
평안이 찾아오면 어떨까요?
기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믿는 자는 분명히 기도하게 됩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평상시에는 간절히 기도할 수도 있고, 혹 그냥 평범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할까요?
간절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온 힘을 다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간구하게 되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소망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올무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고난이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5:3-4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이 있을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내하고 연단하게 되고 소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끝이 아니라 소망의 시작입니다.
소망은 고난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고난이 임할 때에 그것이 내 삶의 끝이며 절망이 아니라 소망의 시작임을 안다면, 고난에서 좌절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옥 속에서도 여유로운 바울의 비결입니다.
세 번째로 바울이 감옥 속에서도 담대한 이유는, 모든 관심이 자기 생명에 있지 않고 예수님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가 살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20절,21절 말씀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은 복음을 위해 걸어온 자신의 헌신이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감옥에 있는 지금도 자유로울 때와 같이 온전히 담대하며, 살든지 죽든지 나의 관심은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함이며 자신의 죽음조차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데 사용된다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합니다.
존귀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메갈뤼노’라는 단어입니다.
뜻은 ‘훌륭하게 만들다, 증가하다, 크게 보이다’입니다.
내 삶으로 주님을 훌륭하게 만들고 크게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삶이 매개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매우 기뻐했습니다.
자신의 대적자들이 자기를 힘들게 해도, 그것으로 주님이 드러나고 존귀하게 된다며 기뻐하고 또 기뻐하는 것이 바울의 모습입니다.
모든 관심이 예수님께 있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데에만 있는 바보같은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1:18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는 바울의 모습이지만, 우리는 그 바울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봅니다.
우리가 이 새벽을 깨우며 기도할 때, 세상은 시간이 아깝다고 합니다.
미련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임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자리임을 믿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고난 당할 때에 주의 복음이 증거되길 원합니다.
고난이 소망으로 바뀌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삶에서 존귀하게 되는 것이기를 원합니다.
시편31:7-8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8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베드로전서3:14-17
14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번호 | 분류 | 제목 | 작성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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