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11월 25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 2:18-29) 열매를 좀먹는 거짓 교훈

11월 25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 2:18-29) 열매를 좀먹는 거짓 교훈
[월요일] 11월 25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 2:18-29) 열매를 좀먹는 거짓 교훈
2019-11-27 17:11:14
강주헌
조회수   458
설교일 2019-11-25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독생자 예수를 이땅에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으로 우린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 아들조차도 하나님의 법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꺼이 십자가라는 가장 저주스럽고 흉측한 형틀에 매달 수 있는, 엄하고도 무서운  분이시기도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매일 새벽 기도하는 우리 성도님들은 
다른 교인들보다도 말씀하실 것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해보시라고 하면, 아마, 아침 일찍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도 오전도 지나고, 오후도 지나고 밤 늦도록까지 말씀하셔도 다 하지 못 할 만큼 많은 경험, 놀라운 경험들 체험들에 대해 말씀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한없는 사랑으로 다가오시고,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슬픔을 참아내고 오랜 시간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기도 하고, 
또 때로는 우리의 잘못을 호되게 꾸중하셨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음을 우리가 믿기에
우리는 결코 주님을 떠날 수 없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당신의  신실한 약속을 따라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계2:18-20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매일 새벽 큐티하고 있는 12월,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계시록의 서두에 나타나고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사역하고,  그 중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복음의 말씀을 강론했던 결과로 생겨난 교회들입니다.


바울이 직접 개척하지는 않았지만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은 헬라인과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배운 후 (행19:10) 
그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소아시아 7교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행1:11)
각 교회들을 위한 예언의 말씀들이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서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은 사도 요한 시대의 교회들뿐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두아디라 성은 교통의 요지로써 상업이 번창했고
특히 직조, 염색, 도자기 등의 동업조합, 길드들이 많기로 유명했습니다.

노동조합, 길드는 공동으로 특정 물품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조직입니다. 협동조합 같은 것인데,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면서 나름의 신앙공동체 또는 정치적인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이 길드에 가입해야 했습니다. 회원이 되어야 했는데, 이 모임에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떠받들고 있는 수호신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당연히 이런 제사 의식 후에는 반드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우상이 그것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하사하는 선물이면서 동시에 같은 신을 모신다는 공동체 의식을 부여하는 기능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길드에 속한 사람들은 그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고, 그 바쳤던 제물로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의례적인 의식들이 2차, 3차로 이어지는데 대부분의 우상들이 그러하듯  음행의 의식을 무슨 신성한 일로 생각하면서 그 악한 일에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이 지적하고 있는 두아디라 교회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사회 생활을 잘 하려면, 일도 잘 해야 되지만, 윗사람이나 사업 파트너들과 같이 놀 줄도 알아야 된다. 상사들 비위도 맞춰줄 줄 알아야 되고, 그럴려면  술도 조금 먹을 줄 알아야 하고 선물, 봉투도 갖다 주어야 하고, 재미있게 노래도 부를 줄 알아야 되고 ...

두아디라, 두아디라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반드시 길드 조합에 가입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우상도 섬겨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길드에 가입한 성도들 중에는 신앙 양심상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상에게 드린 음식은 먹지 말라고 구약성경이 기록하고 있는데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는 계명보다 더 중요한 계명은 없는데 
내가 여전히 성공을 위해서 길드에 계속 가입하여 활동하고 우상 제물 먹고, 우상에게 절하고, 음란한 2차 3차 자리도 잘 가고. 괜찮을까? 계속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고민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이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신앙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이세벨 주의 신앙이었다 라고 성서학자들은 말합니다.

이세벨은 유대교 신앙을 변질시켰습니다.  하나님만 섬길 필요 뭐 있나,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겨도 된다 라는 것입니다. 

계2:20-21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지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서로 분별이 안될 만큼 
혼합주의적 형태를 가졌던 것이 당시의 신앙이었는데

지금 두아디라 교회에 침투해 들어온 이세벨로 상징된 
괴악한 세력에 의하여 심지어는 주의 종들까지도 
그리고 교인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혼합주적 신앙으로 변절되고 
배교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논리로 우상에게 제사드리는 것은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회생활을 위한 활동, 일종의 사회생활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우상 숭배가 아니다, 그저 사회적인 예식에 불과하다 말하면서,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고 갈등하던 많은 두아디라 교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두아디라 성의 사회적 환경을 보았을 떄, 하니님이 그것을 용서해주실 것이다. 사회생활이지 무슨 종교생활이냐? 그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거짓된 가르침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두아디라 교회에 들어온 혼합주의를 성경은 "이세벨"이라는 이름으로 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인들을 미혹하는 악한 시험, 하나님을 섬기되 우상도 섬겨도 된다 하나님이 그것 용인해주실 것이다. 사회생활이지 우상숭배라고 말할 필요 뭐가 있나?

그렇게 구약의 이스라엘을 변질시켰던 혼합주의 신앙은 1세기 초기교회 두아디라 성도들의 신앙을 변질시켰고 그것을 교회가 막지 못해 큰 시험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경고하였고 못하게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안에서는 도무지 이 일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가 없는 상황에 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두아디라 교인들을 향해서,
그리고 이 시대 혼합주의 신앙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말씀합니다.

계2:22-23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그분은 모든 곳에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 성도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보십니다. 
19절 그래 네가 처음보다 신앙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교회를 위한 사업, 사랑과 믿음과 섬김, 인내. 처음보다 많아졌다. 그래 처음보다 많이 발전했지 

20절 "그러나"

"그러나" 가 중요합니다. 

처음보다 신앙의 모습은 더 발전한 것 같지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주님께서 관심있어 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그분만을 섬기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가 되어야 되는가 고민하면서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오더라구요.

때로, 목사도 사람인데 라는 말을 핑계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의 숨겨진 죄나 실수가 드러날 때 그렇게 말합니다. 듀크 대학교 실천신학 교수인 윌리엄 윌리몬은 이렇게 핑계 삼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됨"에 대한 모욕이며, 목회적 소명을 깎아내리는 일입니다. 목회자는 세례 받은 모든 신자들이 그렇듯이 "사람됨" 이상이 되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세례의 물, 안수의 손 그리고 성령의 선물은 사람됨 이상이 되도록 만듭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실한 사람이 되도록 만듭니다.

목사도 사람인데 왜 쉬고 싶지 않을까요? ...

목사도 사람인데 라는 대목이 저에게 강하게 부딛쳤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면 그저 그런 시시한 목사가 되겠구나, 성도들이 가볍게 보는 가엾은 목사가 되겠구나, 성도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형편없는 목사가 될 수 있겠구나
이 말씀이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를 하나님이 특별히 부름 받아 세우셨는데, 충일교회를 위해서, 충일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열심히 섬기라고 이곳에 세워 주셨는데 저는 그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성도들에게 기도하라고 하면서도 나는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성경 읽으라고 하면서도 정작 저는 하루 성경 한 장도 못 읽었고, ... 그래서 반성이 되더라구요.

 

목회자 뿐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도로 부름받았다는 것은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도록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의 성공을 원한다면,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또 세상의 것을 얻지 못한 것 때문에 낙심하고 마음 아파한다면

그것은 두아디라 교회가 겪고 있던 문제들을 우리도 겪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어, 그래 많은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러나"

"그러나" 라는 이 대목이 여러분 가슴에는 어떻게 들리십니까?

 

주님이 원하신는대로 살아가지 않으면서, 스스로는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면
우리도 두아디라 교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슴 깊이 직시하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까?

무엇이 간음입니까?
하나님 아닌 이 땅의 것으로 인해 만족하는 것, 이것이 간음입니다.
내가 돈으로 만족하면
하나님이 그 일을 위해 나를 도우실 것이다. 내가 부를 누리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 생각하는 것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도와주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쁨의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니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풍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만드는 일, 하나님을 나의 자리로 끌어내리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욕구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내가 돈으로 만족해한다면, 세상의 것으로 즐거워하고
이런 저런 선한 핑계를 대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나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히 영적 간음,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침상에 던지겠다. 병으로 고생하게 만들겠다.
발로 밟아버리겠다.
그 가증스러움을 참을 수 없으니( 불꽃같은 눈으로 보신다) 없애버리겠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칭찬의 말도 있고 사랑의 말도 있지만, 책망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꾸짖으십니다.

충일교회 주헌아!
너는 내가 원하는 길로 잘 가고 있느냐?

충일교회 000 야! 너는  내가 원하는 길로 잘 가고 있느냐?

그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 그 높은 길을 걸어가시는 
사랑하는 우리 충일의 성도님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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