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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큐티설교(요한복음 4:1-14)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설교일 | 2020-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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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었어요. 또 전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마가복음 1장 38절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 주님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물이 되셨고 또 이것을 섬김이라 하셨고 또 이 일을 위해 전도한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주님이 ‘천국이 저기 있다, 우리 함께 천국 가자’ 그렇게 말만 했으면 사람들이 잘 따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렇게 말만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주님을 그렇게 많이 따랐던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은 영생과 천국에 대해 전해주고 계세요. 특별히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셨습니다. 그녀를 전도하기 위해 우물가로 가신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유대인 남자였던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갔다라고 하는 건 사실 엄청 파격적인 일이었어요.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그 첫 번째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방인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들을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사마리아 사람이 원래 유대인이었다는 겁니다.
그 옛날 남 유다가 앗수르에 망했을 때 유대인들이 앗수르로 끌려가는데 다 끌려가지 않고 남아있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텅 빈 이스라엘에 이방인들이 들어와 유대인들과 결혼 하고 우상을 섬기게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옛 수도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인이라 그렇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는 거예요.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우리도 같이 예배하자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이걸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거절한 거예요. 이렇게 말이죠. 너네랑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너네처럼 통혼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네보다 깨끗하다. 뭐 그런거죠. 그래서 여기에 빈정상한 사마리아인들이 따로 신전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그 둘 사이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요. 길을 갈 때도 사라미아 땅을 지나칠 것 같으면 일부러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상관없어요.
그들과 상종 안 할 수만 있으면 그깟 수고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어요. 이게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그들이 이방인이었다는 거.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가 그 여인이 죄인이었다는 거예요. 그녀는 남편이 여섯이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창기 같은 삶을 산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그녀가 여인이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여인이 왜 문제일까요?
그것은 그 당시에 남자들이 여인을 사람 취급도 안 했다는 데 있어요.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아담과 하와가 죄지을 때 하와가 먼저 아담을 유혹했다는 거예요.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이 죄를 지은 거라는 겁니다. 이게 남자들이 여인을 무시했던 이유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이고, 죄인이고, 여인인데도 그것을 다 무시하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신 거예요.
여러분, 이것은 실로 아주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웠던지 그 당사자인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9절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은 사람을 볼 때 조건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건을 따지죠. 그러런 조건들로 사람들을 구분해요.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과, 그리고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과 상종 안 합니다. 있는 집안과 없는 집안이 사돈을 맺으려고 하면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는지 몰라요.
그리고 권세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웠다고 배우지 못한 사람 무시하고요. 또 배우지 못한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자기들이 뭐 잘난 게 있냐고 따져 묻습니다. 게다가 지역감정이라는 게 있어서 좌우가 분리되어서는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스 어느 누가 되었든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구분도 짓지 않으십니다. 전도대상자를 절대로 구분 짓지 않으세요.
누구에게나 다 찾아가시는 겁니다. 그 증거가 바로 에베소서 2장 14절 말씀이에요. 에베소서 2장 14절 말씀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막힌 담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허무신 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미움을 십자가에서 행하신 용서로 다 허무셨어요. 그게 우리에게 주신 화평이고 평화인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한테는 빈부와 그리고 배우고 배우지 못함이 하나도 문제 되지 않아요.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예수님한테는 모두가 영혼 구원의 당사자인 겁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하신 거예요.
도저히 상종 못 할 사람에게 가서 전도하신 겁니다. 누가 보면 손가락질 받을 그런 사람에게 가서 전도하신 거예요. 오늘 본문은 그 장소가 우물가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물가에 왜 가셨을까요? 사실 예수님도 조금 피곤하셨거든요. 그래서 목 좀 축일 겸, 좀 쉴 겸 우물가로 가신 거예요. 그리고는 거기에서 전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상생활의 전도라고 말합니다.
어떤 전도세미나를 하고 난 뒤에 특정한 날을 잡아가지고 전도한 게 아니라 일상에서 전도하신 거예요. 여러분, 건강한 교회는 뭐에요? 건강한 교회는 일상생활에서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영혼 구원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는 교회에요. 왜냐하면 전도는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죠. 일상에서 하는 겁니다. 우리 삶이고 생활인 거예요.
그래서 언제나 우리 삶은 영혼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보세요. 물 길으러 오는 여인 보고 물 좀 달라고 하시잖아요. 그게 예수님이 하신 첫 마디입니다. 그게 전도의 첫 번째 접촉점이었어요. 물을 좀 달라.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왜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주님이 그 여인에게 있는 영혼의 갈증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타는 목마름을 주님이 보셨어요. 주님, 지금은 제가 야곱의 우물을 길러 왔지만 사실 저에게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갈증이 있어요. 제가 지금 긷고 있는 이 물은 저에게 아주 잠깐의 갈증만 해소 시켜 줄 뿐이에요. 그러니 주님, 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를 주시옵소서. 이게 그녀의 속마음이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가 있으십니까? 아니면 잠깐의 위로만 주는 것들뿐인가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일의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물질의 있음과 없음에 상관없이 합격과 불합격에 상관없이 여러분 마음에 평강을 주는 게 있으십니까? 잠깐의 목마름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 어떤 문제가 와도 갈증이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같은 그런 평안이 있으신가요? 저는 지금 아주 심각하게 여러분에게 묻고 있습니다.
빚을 지고 쫓기는 사람은 이 빚만 해결되면 살 것 같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도할 때가 많아요. 해결 받고 싶은 수많은 목마름이 있는 겁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이것만 해결되면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게 해결된다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던가요? 그게 해결된다고 다른 문제 안 나타나던가요? 여러분, 우리는 왜 영원히 목말라 하고 있죠?
그것은 우리가 아직 영생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독함과 허전함과 갈증을 느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영생의 문제는 언제 해결 받게 되나요?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됐을 때에요. 이 문제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전도할 때 확신을 가져야 돼요. 아, 이 사람도 고독하구나. 저 사람도 허전하구나.
이 사람에게도 갈증이 있을거야. 왜 그렇죠? 그 사람이 지금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런 사람 보면 확신이 생기는 겁니다. 아, 저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필요하구나. 전도해야지. 이 사마리아 여인도요. 고독했어요. 그녀가 물 길으러 나온 시간을 보면 여섯 시쯤 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간이 우리 식으로는 낮 열두 시에요.
가장 더울 때죠.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은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낮에는 낮잠을 자요. 그래서 그 시간에는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다는 거예요. 왜요?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손가락질 받을까 봐. 사람들이 수근덕 대는 거 듣기 싫어서. 사람들이 얘기해요. 남편이 여섯인데 지금 사는 남편도 자기 남편 아니라고.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남편 관리 잘하자고. 뭐 그러면서 사람들이 그녀를 피하는 겁니다.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거예요. 저, 저 화냥! 여러분, 그녀가 예뻤을까요, 안 예뻤을까요? 남편이 여섯이나 된 거 보면 예뻤을 것 같아요. 안 예뻤으면 남자들이 그렇게 갔겠어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아무리 그렇게 외모가 출중한 그여도 외로웠다는 거예요.
그 어떤 것도 그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한 겁니다. 남자 품에 안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다고 해결될 고독이 아닌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외모라고 해도 그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 거예요. 유명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거 보세요. 아무리 많은 남자가 그들을 바라봐도 자살하잖아요. 하나님으로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런 거예요.
오늘 본문 이후를 보면 하나님이 갑자기 그녀에게 ‘네 남편 불러와라’라고 말씀하세요. 여러분, 이게 할 말인가요? 생수 얘기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남편 얘기를 왜 하냐고요. 왜 그랬겠어요? 그 여인이 가장 숨기고 싶어했던 부분이 바로 그 남편 이야기였기 때문이에요. 이걸 숨기고는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여러분, 수박 겉핥기로는 부족해요. 죄가 가리고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신앙에 있어 가장 큰 방해꾼은 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게 죄에요. 그래서 사단이 자꾸 죄짓게 만드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정말 연약하기 때문에 죄짓는 것도 있어요. 그것은 그런대로 이해해 줄만 해요. 그런데 정말 용서 안 되는 건 죄를 고백하지 않는 거예요.
죄는 죄대로 놔두고 다른 얘기 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 기도 좀 들어주세요. 주구장창 그 얘기에요. 여러분, 그러면 주님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가증한 기도 잘도 하는구나. 네 죄가 뭔지 고백 안 하면서 나를 부려먹으려고 하는구나. 얘야. 네 죄 먼저 고백해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맥이 빠지잖니. 여러분, 하나님도 맥이 빠지신데요. 우리가 끝까지 숨기고 있으면 그러신데요.
자기 모습이 어떤지 드러내지 않으면 그러신데고요. 하나님이 아무리 그 문제를 고쳐주고 싶어도 우리가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거 풀라고 문제 주시는 건데 우리가 끝까지 그것 붙잡고 변죽만 울리면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시는 거예요. 그래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네 남편 불러오라 그럴 때 불러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네 죄 고백하라 그럴 때 고백하셔야 돼요. 우리는 오늘 그걸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남편 불러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 죄를 고백하게 하기 위해 물으신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죄가 고백 돼야 그 안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떤 문제가 있으십니까?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 원하시나요?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셔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그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셔야 돼요. 오늘 그러려고 나오셨잖아요. 우리 기도 들어달라고. 우리 안에 있는 공허함을 달래 달라고. 우리 가운데 있는 목마름을 채워달라고 이 자리 가운데 오셨잖아요. 그러면 채움 받아야죠.
그 주님 만나야죠. 오늘 이 시간 그 주님을 만나게 되시기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실 거예요. 주님은 오늘도 아주 부지런히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수를 가지고 우리 가운데 오고 계세요. 그 주님을 오늘 기도 시간에 만나게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번호 | 분류 | 제목 | 작성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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