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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환 전도사
    2018-01-31 (수) 09:27 ㆍ조회: 8      
    1월 31일 큐티설교(행12:18-25)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사도행전 12장 18-25절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10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유대인 출신이 아닌 이두매 출신인 헤롯 아그립바 1세(헤롯)는 혹시나 수많은 군중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어떻게 할까 노심초사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인들이 적대시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을 가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격인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잡아 참수형을 시켰습니다. 이를 본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수장인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고 하지만 무교절 기간이라 그를 옥에 가두고 4인 4개조가 밤낮으로 베드로를 지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 베드로가 구출이 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베드로의 탈옥 사건을 통해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의 완전한 환심을 사기에 가장 최적의 인물인 베드로가 쥐도 새도 모르게 탈옥을 했으니, 헤롯은 그야 말로 좌불안석입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을 지킨 간수들을 심문하고 죽였습니다.
    18-19절 말씀 읽어 보겠습니다.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그 간수가 4명인지 16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 4명 이상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최소 4명 이상의 목숨과 베드로와의 목숨을 바꾼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하나님께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심각한 질문을 야기 시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4명의 간수의 목숨은 아무렇게 여기지 않는다 말입니까?
    참으로 일리 있는 의문입니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교리와 연결됩니다.
    이 의문 속에 우리가 인정하지 않건 인정하건 은연 중 베드로의 입장이 아닌 간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전지하신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결코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과 상황 속에 선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정과 작정 교리는 반드시 제 3자의 시선이 아닌 당사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죽어야 이상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갚기 위해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도행전을 통해 또한 베드로의 순교의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4명의 간수처럼 죽어지더라도 그 어디에도 항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목숨과 우리의 목숨을 바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한 명 한 명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자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고백이 무엇일까요?
    감사와 찬양 뿐 입니다. 불평 불만을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왜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항변할 수 없습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만들었냐고 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베드로처럼 날마다 빚진 자의 모습으로 하나님 뜻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사랑하십니다. 자기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경험하는 이 새벽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하나님 나라 위해 빚진 자로 날마다 살겠습니다.” 이 고백을 올려 드리는 이 새벽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간수를 죽인 헤롯은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성경에는 가이사랴로 간 이유를 말하지 않지만 요세푸스가 기록한 ‘유대 고대사’에 의하면 헤롯은 그때,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영국 원정에서 승리하고 귀환한 것을 축하하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헤롯이 로마 황제에 의해 임명된 분봉 왕이었던 만큼, 로마 황제를 위한 축제를 개최하고 참여하는 것은 그의 주요 업무였습니다.
     
    그렇게 가이사랴로 간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 대해 심히 노여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두로와 시돈
    지중해 북쪽 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두로와 시돈은 무역 항구도시인지라 어절 수 없이 식량을 전적으로 인근 이스라엘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두로와 시돈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헤롯은, 그 지방에 대한 식량 공급을 갑자기 중단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루 아침에 식량난의 위기에 봉착한 두로와 시돈의 지도자들은, 헤롯 왕궁의 내실 집사였던 블라스도를 매수하여 헤롯 왕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와중에 헤롯은 로마 황제를 위한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두로와 시돈에서 가까운 가이사랴로 내려갔고, 이 정보는 블라스도를 통해 즉각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연설을 합니다.
    21-23절 말씀입니다.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요세푸스가 쓴 ‘유대 고대사’에 헤롯의 죽음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영국 원정에서 승리한 글라우디오 황제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 둘째 날로서, 주후 44년 8월 1일이었던 그 날은 로마 황궁에 있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헤롯은 그날 은실로 짠 왕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가 원형극장이 무대 위에 올라가자 그의 은빛 왕복은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도록 황홀하게 빛났습니다. 이어 그의 연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시돈과 두로에서 동원된 박수 부대는 그를 향해 하나님이라며 열광적인 환호와 찬사를 보냈고, 스스로 하나님이 된 헤롯은 그들의 환호와 찬사를 마냥 즐겼습니다. 바로 그때, 유대인들이 불길의 징조로 여기는 올빼미 한 마리가 날아와 무대 기둥 위에 앉았습니다. 헤롯이 그 올빼미를 보는 순간, 그는 갑자기 복통을 일으키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놀란 측근들이 황급히 왕궁으로 옮겼지만 끝내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던 헤롯은, 불과 닷새 만에 숨을 거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헤롯의 죽음치고는 너무나 비참합니다.
    말 한 마디로 야고보를 죽이고 간수를 죽이며, 두로와 시돈의 식량 공급을 차단할 수 있는 헤롯이 발 한 번 짓이기면 죽어버리는 작은 벌레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의 비참한 실존입니다.
    아무리 권력을 가지고 돈을 가지고 명예를 가지며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작은 벌레가 주는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가 바로 겸손한 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자는 바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헤롯의 죽음 뒤에 바로 이런 말씀이 이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흥왕하여 더하더라’는 원어의 문법은 미완료 과거 시제입니다. 이것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닌 지속적인 것임을 드러냅니다.
    변화지 않는 말씀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권력과 욕망처럼 쇠하는 것이 아닌 흥왕하고 더하여집니다. 그러기에 겸손한 사람은 바로 이 말씀을 의지하며 말씀을 붙잡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지속적인 삶으로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5장 10절입니다.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은 예수님 내 안에 계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순종할 때, 말씀이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내가 그분의 은혜와 은총 속에 있음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를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5절 말씀입니다.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예루살렘의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해 안디옥 교회에서 헌금을 모아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 기간을 주후 46~48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헤롯이 벌레에 먹혀 죽은 년도는 주후 44년의 일입니다. 2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또한 문맥적으로 사도행전 11장 30절에 부조금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가고 난 이후에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러나 헤롯이 벌레에 먹혀 죽고,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말씀하는 이후에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까지 450km가 됩니다. 어른이 걸어도 족히 15일은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안디옥은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이방교회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어떤 인종적 종교적 차별을 받았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가 고난에 쳐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생명 같은 돈을 쪼개어 헌금합니다. 사울에게는 실제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었던 곳입니다. 두 번 다시 가기 싫은 곳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인 바나바와 사울이 직접 전달합니다.
     
    이것이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의지하며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는 자의 모습임을 그렇지 못하고 오직 권력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헤롯의 죽음과 대조시키며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들은 헤롯의 모습입니까? 바나바와 사울의 모습입니까?
    권력과 욕망을 위해 살아갑니까? 아니면 바나바와 사울처럼 지속적으로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여져 갑니까?
     
    이 두 가지의 삶의 모습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발 한 번 짓이기면 죽을 벌레에게 먹혀 죽어 허망하게 끝날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에 자신을 의탁하며 순종하며 살아갈 때, 때로는 야고보의 죽음처럼 어처구니 없을지라도,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러 목 박혀 줄을 지라도, 바나바처럼 자신이 데리고 온 동역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 줄 지라도 결코 쇠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을 허망한 욕망과 권력에 의탁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변화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베드로를 살리기 위해 간수 4명을 죽인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이 새벽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왜 나에게 이런 상황과 환경을 주시나요라고 불평 불만이 아닌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는 이 새벽이 되길 기도합니다.
    말씀 단 한 구절이라도 겸손히 순종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이 새벽이 되길 기도합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내 뜻과 반한다면 내 뜻을 포기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이 새벽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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