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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주헌 전도사
    2018-02-06 (화) 07:48 ㆍ조회: 8      
    2월 6일 큐티설교(행14:19-28) 안디옥으로의 귀환

    오늘 말씀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를 고쳐준 후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1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장소였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한 일 그리고 지금까지 복음 전했던 지역들을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다시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권하였고, 마지막으로 선교 출발지였던 안디옥 교회로 다시 돌아와 전도 결과 보고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속에 있던 복음의 불이 그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죽을 뻔한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며칠 전만 해도 앉은뱅이가 일어난 일로 인해 바나바와 바울을 살아있는 신처럼 떠받들었던 루스드라 사람들이 어찌된 일인지 바울에게 돌을 던져 그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바울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찾아와 바울의 복음 전도를 방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방해한 정도가 아니라 바울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 극심한 박해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정말 집요한 사람들입니다. 안디옥에서 루스드라까지 150km나 되는 먼 거리인데, 계속해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찾아와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바울을 위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박해가 점점 더 심해져서 바울을 그 성들에서 쫓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이젠 아예 바울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바울은 순간순간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 이성 저성 계속해서 피해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 루스드라에서는 이 위기를 피하지 못해 결국 심하게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이 일을 아주 담담하게 말합니다.
    행14:20-21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여러분 바울을 보십시오.
    죽을 뻔 했으면서도 아무 주저함 없이 또다시 일어나 다른 성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성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친 사람입니다. 뭔가에 미쳐 있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난 주일예배 시간 "위험한 도전, 위대한 도전"이라는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겐 바울처럼 자신을 사로잡은 삶의 목표, 도전 과제가 있습니까? 위험하지만 위대한 도전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죽음을 무릅쓰며 또 다시 일어나 복음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예레미야가 생각이 났습니다.
    바울도 예레미야처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불타버릴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렘20:8-9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모든 선지자들의 반대, 왕과 모든 백성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스라엘의 파멸을 선포해야만 했던 예레미야에게 온갖 비난, 비웃음, 박해가 쏟아져내렸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예언자의 일을 감당하기에 지쳐버린 그가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고전9:16하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복음 전하는 자로 사명을 주셨는데 그 맡겨주신 책임을 게을리한다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자기 마음속에 강력하게 불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밖으로 분출되지 않는다면 그 불로 인해 자기 속을 까맣게 불타버릴 것이라는 의미를 또한 담고 있습니다.

    전에 주님을 핍박하던 일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 용서받고서 새 사람이 되고 나니 그 기쁨과 감격을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전도하려는 마음이 그의 가슴 속에 가득 차 버렸습니다.
    온갖 시험과 박해, 심지어 목숨도 잃어버릴 위기를 겪는다 하더라도 그 어떤 저항이 있다 할지라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주헌아 너는 요즘 무슨 재미로 사냐?"
    다들 잘 나가는 친구들인데 지금 한창 자리 잡아서 바쁘게 자기 일 하고, 애들 키우고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이따금씩 드는 생각이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가?’ 자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문득문득 찾아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여기에서 이렇게 살고 있지?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지?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적인 목표들,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영원한 목표, 온전한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들을 자기 노력으로써 성취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뿐입니다. 그 즐거움은 잠시 뿐이고 영원한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또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무슨 재미로 사니?"
    “이젠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과 소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불이 불타고 있습니까?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이루기를 원합니까? 어떤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까?


    2. 바울은 자신이 몸소 고난을 당함으로, 고난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였습니다.

    행14:22-23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2절 말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는 말씀이 간절하게 와 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바울 자신이 그런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해야 하는 그 사명 때문에 그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쉽고 빠른 길로 올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왔던 길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돌아온 것입니다. 만났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믿음의 도전을 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위해 장로들을 세워 교회들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환난과 기근과 박해 그 어떤 것도 바울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우리게 맡기신 일을 이루려면 어려움들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에 굴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잖아요. 모든 것을 우리 위해 다 주셨잖아요. 그 치욕스러운 십자가도 우리 위해 지셨잖아요.


    3. 바울은 하나님이 일하셨고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로써 쓰임 받았을 뿐이라 고백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을 마친 사도 바울 일행은 선교 여행의 결과에 대해 두 가지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행14:27-28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첫째,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하 행하신 모든 일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보고의 내용은 자기들이 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교를 하면서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들, 당했던 박해들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선교여행을 통해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하셨다고 보고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많은 환난을 겪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셔서 많은 이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요. ‘자신이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열심히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한 끝에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고 우린 도구로 쓰임 받았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자세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일에 쓸모 있게 하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우리 모두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직 영광 받으실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선교보고의 현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린 어떤 보고를 드릴 수 있을까? 천국에 갔을 때 어떤 선교 보고를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닙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아주 짧은 시간만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본향 저 천국에 언젠가 돌아갈 것인데 우리는 어떤 보고, 어떤 기쁜 소식을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모두 이것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을 주님이 받으실만한 시간으로 보내고 있는가? 하나님이 오늘 나의 삶을 기쁘게 받으실까?
    그래서 나의 보고를 받으시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셨으면 좋겠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내가 왜 이 땅위에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지금 어느 곳을 지나고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설 때에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 앞에 찬양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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