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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환 전도사
    2018-02-14 (수) 09:24 ㆍ조회: 9      
    2월 14일 큐티설교(행17:16-34) 매일 말씀으로 나를

    사도행전 행17장 16-34절 매일 말씀으로 나를 채우는 인생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지만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격렬히 반대합니다. 그 반대에 바울은 베뢰아로 이동하여 말씀을 증거합니다. 하지만 그곳까지 찾아와 복음을 반대하기에 결국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덴으로까지 와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데살로니가 유대인들과 아덴 사람들이 베뢰아 성도들처럼 매일 말씀을 상고하지 않는 특징이 무엇인지 크게 3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상고하지 않는 자의 특징
    첫 번째, 우상이 가득합니다.
    16절, 23절 말씀 읽어 보겠습니다.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신화들의 본산지입니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습니다. 말씀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 버린 것이 우상이 됩니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조차 나의 욕망대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려한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숙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매일 말씀을 상고하지 않는 자의 특징
    두 번째, 변론하기를 좋아합니다.
    18절, 21절 말씀 읽어 보겠습니다.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새로운 것을 찾아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를 바랬으며 채워지지 않는 지적 욕망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 끝은 언제나 허무였음을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아덴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아갔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을 상고하지 않고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에 변론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가득 채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 없는 삶은 허무와 허영과 공허 뿐 입니다.
    이 새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 나를 말씀에 맞추어 순종하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매일 말씀을 상고하지 않는 자의 특징
    세 번째, 인생이 허무합니다.
    아테네(Athene) 여신을 기념하기 위해 '아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페리클레스(B.C.495-239)에 의해 이 도시는 전성기를 맞아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비롯한 수많은 사원과 건축물들이 건축되었습니다. 아울러 문학, 철학, 과학, 수사학 등이 꽃을 피웠으며 민주주의의 기초가 내려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펠로폰네수스 전쟁(B.C.431-404)으로 인하여 아덴은 빛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문학적, 역사적 명성은 그대로 남아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하였을 때는 찬란했던 옛 영광이 사그라든 뒤였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명성만은 계속 지속되고 있던 터라 그 도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였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영광에 매여 있으니 그들의 삶은 언제나 허구와 쟁론과 또 다른 새로운 것을 향한 구걸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아레오바고 설교를 통해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24-31절의 말씀을 요약하면

    천지를 주재하시는 분은 인간의 허무와 무능력을 자위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우상이 아닌 온 우주와 인류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러니 그 분만이 진정한 신으로 믿으며 나아갈 때 심판을 면할 수 있으며 죽음에서 부활의 몸으로 우리도 변화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변화된 자들이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인간 설명
    인간을 한문으로 쓰면 人間이 됩니다.
    사람 인자에 사이 간자를 씁니다. 즉 인간은 사이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그 사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크게 2가지로 분류한다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입니다.
    즉 인간은 제한 된 시간 사이에서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한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공동체이고 사회입니다.

    먼저 시간이다.
    우리는 이 제한 된 시간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이 시간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숨이 끊어져 죽겠지만 그 죽음 이후에 있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가 되었기에 시간 속에서 시간에 연연해하며 우리의 늙음을 후회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우리의 삶을 인정하며 또한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기에 지금 주어진 이 시간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입니다.

    공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공간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려 합니다. 내가 얼마나 공간을 지배하느냐, 내가 얼마나 큰 공간을 가지고 있느냐?
    큰 공간을 가진 집을 통해, 공간이 큰 자동차를 통해, 내 지배력이 미치는 공간의 확대를 위해 우리는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무소부재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공간 사이에 이 공간을 지배 받으며 살아가지만 내가 영원히 거처해야 될 공간이 어디인지 알기에 그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기에 이 땅의 공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공간을 축소시키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역이 더 커지는 역설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부인입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완벽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간의 주인이시지만 제한 된 시간 속으로 오셨습니다. 33년의 짧은 시간을 사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날마다 복종시켜 살아갔기에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이 세상 종말이 오는 그날까지도, 아니 영원토록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온 우주에 없으신 곳이 없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하지만 성육신을 통해 지구라는 이스라엘이라는 나사렛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사셨습니다. 나아가 머리 둘 곳이 없는 삶을 3년이나 보내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 평도 되지 않는 자신의 공간도 없지만 자신의 공간을 축소하신 예수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쉬지 않고 확장 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사이에 살아가지만 이것을 부인하며 이것을 초월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삶의 현실은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현실 속에서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지만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산둥 수용소 - 길키
    미국의 신학자인 길키라는 분이 2차 세계대전 속에 일본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산둥 수용소에서 보낸 체험을 책으로 쓴 것이 있습니다. 산둥 수용소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군인, 신부, 목사, 운동 선수 등 수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유와 시간, 공간마저 제한되어 있는 이곳에서 그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간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조금만한 공간 속에서 수용인원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공간을 지키려는 자들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존재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나 신부나 군인이나 그 어떤 직업과도 상관없이 자신의 공간을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자신의 공간을 양보하는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러기에 성숙한 사람은, 기독교인이기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매일 성화하는 사람의 특징은 인간의 가장 큰 본능인 자신이 가진 공간을 확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그 공간을 타인을 위해 내어 줄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충일교회 성도님들.
    우리들의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사용하고 쓰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매일 우리 안에서 상고 되지 않고 그 말씀에 우리를 맞추어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조정합니다.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문제로 날마다 변론하며 인생을 낭비합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허락된 이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며 허무하게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매일을 채워 간다면
    시간과 공간을 제한되어 줄어들고, 더 열악한 상황과 환경이 찾아올지라도
    바울처럼 그 어디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다스리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살아가는 자가 아닌 하나님 나라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나를 내어 던질 것입니다.
    그러한 인생의 결말은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결코 공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 십 년, 수 백 년의 시간이 지나도 하나님의 시간으로 건져져 후대에 귀한 본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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