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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석 부목사
    2018-04-12 (목) 20:52 ㆍ조회: 12      
    4월 12일 큐티설교(스8:1-20) 하나님의 도우심

    어제의 본문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는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2차 귀환한 사람들의 가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에스라와 함께 한 수는 남자만 대략 1775명이었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치면 9000명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1차 귀환 때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수가 5만명 정도였으니까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수입니다. 1차에 비하여 2차 귀환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왜 이렇게 적은 수만 돌아오게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자신들이 현재 누리는 안정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지금 이들은 처음 포로로 끌려갔던 1세대들이 아닙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지 70년 만에 풀려나게 되었고, 1차 귀환 후 80년이 지나 2차 귀환이 이루어 졌으니 15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2세대 3세대들이 이미 바벨론에서 기반을 잡고 터를 닦고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아닥사스다 왕의 부친인 아하수에로 왕 때에 유대인 출신의 여인이 왕후가 됩니다. 그녀가 누구입니까? 바로 에스더입니다. 또한 모르드개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부와 명예를 누리던 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랬던 이들이 편안하게 누렸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4달 동안 1440km를 걸어야하는 이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습니까? 이러한 결단이 쉬웠겠습니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페르시아에 머물던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숫자에 1%도 안되는 숫자였지만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 사람들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훗날 예루살렘 공동체의 신앙 개혁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역사의 주인공들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의 결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결단으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을 때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룹바벨과 족장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1차 귀환 때에도 함께 믿음으로 떠났던 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이방 땅 가운데 머물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에스라를 통하여 다시 그들을 부르십니다. 두 번째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던 자들을 이후에 느헤미야를 통하여 세 번째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기회를 주시고 온전히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이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은 2018년 4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또한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아직도 부르심을 듣지 못하고 자고 있는 그분들 또한 하나님의 기다리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계셨는데 이 집사님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너무 즐거운 것입니다. 봉사도 하고 구역예배도 드리고 전도대도 나가고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역 대심방이 있어서 목사님을 모시고 가정마다 다니는데 너무 신나는 겁니다. 딱 한집만 빼고는 너무 은혜로운 심방이었습니다. 딱 한집은 바로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남편이 잠깐 나간 사이에 얼른 예배를 마치고 다른 집으로 심방을 갑니다. 어둑어둑 해가져 가는 시간에 마지막 집에 심방을 마치고 대문을 열고 나왔는데 술에 취한 남편이 그 집 앞에 떡하니 서있더라는 것입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때 이 남편은 오늘 한번 목사고 잡사고 잡히기만 해봐라 가만 안둔다 하고 쫓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남편이 함께 심방을 다녔던 장로님에게 이렇게 묻더라는 것입니다. 장로님 이렇게 술을 마셔도 교회가도 됩니까? 장로님께서 당연히 와도 된다고 어서오라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다리시는데 이번주에 꼭 오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분 교회 오셨을까요? 안오셨을까요?

    그렇습니다. 한번에 안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 세 번, 아니 수십번 전도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기다리심 가운데 있는 영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2차로 바벨론에서 나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80년전 1차로 귀환 하였던 족장들과 가계들과 거의 일치하였습니다. 동일한 가문의 후손들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가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의 삶을 정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몰랐던 것입니다. 왜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던 조상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중요합니다. 2차로 귀환하였던 그들은 믿음의 조상들의 본을 받아서 힘들지만 포기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가문을 소개합니다.

    4절 말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4.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 명이요

    바핫모압 자손인 엘여호에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핫모압의 가문은 바벨론에서 소위 잘나가는 가문이었습니다. ‘바핫모압’이라는 말의 뜻은 ‘모압을 다스리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집안은 모압 지방의 총독이나 장관을 배출한 가문이었던 것입니다. 이들 가문이 1차 귀환 때 2810명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후손들 2백명도 돌아오게 됩니다. 바핫모압의 가문의 신앙을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차 귀환을 이끌었던 족장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엘여호에내’입니다. 그 이름의 뜻는 ‘내 눈이 하나님을 바라본다’입니다. 바벨론에서의 영광을 뒤로하고 그들이 바라보았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가문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 충일교회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을 향해 고정시키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세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다 거부하는 믿음의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하반절의 말씀입니다.
    17c.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이제 에스라는 바벨론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위히여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소집을 시키고 그곳에서 3일을 머무르게 됩니다. 이 강을 건넘으로 진짜 귀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곳에서 4개월 동안 계속될 여정과 곳곳에 험난한 광야와 수많은 대적과 도적들을 어떻게 대처하여 행진할 것인지를 준비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내일 본문에서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결론적으로 에스라의 기도와 준비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살아오는데 수많은 어려움과 환란과 역경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지 못하여 쓰러지고 넘어질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앞에 나아가 기도로 말씀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항존직분자 피택 선거를 위해서 2달 넘게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1월달부터 수요예배후에 모여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점검을 하던중 아주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돌아가기로 결정한 가문 중에 레위 자손이 한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1차 귀환 때 제사장들이 4289명이 귀환 했지만 성전 일을 담당할 레위인들은 341명 밖에 없었습니다. 제사를 위해 제물을 잡고, 집기를 준비하는 일을 담당하는 레위인들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2차 귀환에는 레위인들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율법에 근거하여 바른 예배를 가르치려고 했던 에스라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지금 왜 이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할까요? 성전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달팠는데 그에 때한 보수는 너무나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바벨론에 와서 보니까 성전에서 하는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도 넉넉하게 살게 된 것입니다. 구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레위인들 아주 나쁜 사람들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존귀한 직임을 버리고 자신의 안락함을 위하여 과감하게 포기해 버린 이들 아주 나쁜 사람들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중에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교회를 떠나고, 조금 힘들고 부담되는 일은 맡기 싫고, 드러나고 목소리 높이는 자리는 서로 하려고 하는 우리들 아닙니까? 이 레위인들 하고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사로 장로로 안수집사로 권사로 집사로 직분 맡겨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겸손 또 겸손 그리고 겸손하여 맡겨주신 직분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살피며 봉사하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17절~18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에스라는 가시뱌 지방으로 열한명의 영향력 있는 지도를 보내어 레위인들을 데리고 오게 합니다. 여기서 ‘데리고 오라’라는 말에는 강권하여, 즉 왕의 명령을 말하며 강제적으로 데리고 오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왕의 명령과 강제가 아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8절 상반절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기록합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일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분명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진행되어집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우리 교회의 많은 사역들 가운데 특별히 이번 항존직분자 피택 선거 가운데  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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