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1월 28일 큐티설교(요한복음 7:14-24) 진리를 붙잡으려면

1월 28일 큐티설교(요한복음 7:14-24) 진리를 붙잡으려면
[화요일] 1월 28일 큐티설교(요한복음 7:14-24) 진리를 붙잡으려면
2020-01-28 11:12:50
권도완
조회수   949
설교일 2020-01-28

국민일보 겨자씨에 생각해볼만한 이야기 하나가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백화점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비상벨이 울리자 경비원들이 출동했습니다. 결국 도둑은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훔친 물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열대에 있던 물건도 모두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백화점에 무단 침입했던 도둑은 죄가 없었기에 잠시 후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백화점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상품에 붙은 가격표가 모두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000원짜리가 100만원이 돼 있기도 하고 1000만원짜리가 고작 몇 천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순식간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왔고 백화점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교훈을 주기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사회 모습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 가장 큰 도둑은 눈에 보이는 돈이나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의 가치관을 뒤집어 놓는 도둑이 더 무서운 도둑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신앙이 무시되는 사회, 돈과 권력과 명예와 건강이 최고의 가치가 돼버린 이 시대를 비꼬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먼저 뿌려졌지만 원수 마귀가 우리 삶에 거짓된 가르침을 덧뿌려 놓았습니다. 신앙과 믿음이 전달되어지며 잘못된 가르침도 전달되어 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진리가 아닌 거짓된 가치관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거꾸로 되어버린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설날에 가족 친지를 만나 가장 많이 나누었던 대화, 나의 삶의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어쩌면 그것들이 내 삶의 중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동일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많은 랍비들이 있었지만 그 말씀이 거짓된 가치관에 오염되어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2절과 23절의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라는 말을 직역하면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준 이것 때문에라는 말입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준 이것 때문에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유대인들은 모세가 안식일에 쉬는 규례와 상관없이 할례만은 안식일에 주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할례를 주는 것 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계속 시행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구별된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가 안식일에 시행될 수 있었다면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람의 육신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 예수님께서 사람의 전신을 고치시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23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일을 노여워하고 있습니다. 노여워하다는 원어 콜라오는 노여워하다는 뜻도 있지만, ‘미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미치도록 화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정도가 넘어서서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19절에 너희가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물으십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적 없습니다. 20절에 발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왜 이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미워하였을까요?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명예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랍비들을 통해 전수 받았습니다. 교육을 통해 좋은 스승을 통해 전달 받았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랍비는 랍비를 낳습니다. 랍비들,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의 기득권을 형성하며 존경받기 시작했고 누구 밑에서 사사받았는지가 중요하였습니다. 그리고 랍비 밑에서 배운 자들이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예수라는 인물은 전혀 교육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성전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이 자신들보다 뛰어났으며,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들도 행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이 진리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14-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유대인들은 말합니다.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이들은 매우 당황하고 있습니다. 어느 랍비에게도 배우지 않았던 학문적 배경이 없는 예수님이 랍비들의 학문에 정통하여, 아니 더 뛰어난 가르침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놀라움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교훈’ ‘디다케는 가르쳐진 것을 뜻하며 이 단어는 랍비들의 교훈, 사도들의 교훈을 지칭할때도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교훈, 디다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직접 가르쳐진 것임을 밝히시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5절부터 8절을 보면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이것을 밝히십니다.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랍비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신들보다 뛰어나고 완벽하다는 것을, 그런데 들을 귀, 말씀을 마음에 품을 마음의 귀, 양심의 귀가 닫혔던 것입니다. 그들은 듣고 싶은 말씀을 골라 취하였고, 정작 들어야 할 말씀에는 자의적으로 귀를 닫았습니다. 현실에서 누리는 명예와 권력, 사람들 앞에 인정받음이 또 다른 선악과가 되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뒷전으로 하고 그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두려운 것은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손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것들, 이 땅의 선악과들을 향해 내 손이 뻗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나의 손은 나의 마음은 진정으로 어떤 가치관을 붙잡고 살아갑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오늘도 내 욕심의 선악과를 붙잡고 있습니까? 우리의 작은 손으로는 둘 다 붙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는 놓아야 합니다.

진리를 붙잡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왜 사역의 초기에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왜 사역을 마친 후 열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왕 삼으려는 사람들 뒤로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을까요? 눈 앞에 서악과가 어른거릴 때 치워버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진리를 붙잡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진리는 오늘도 내 앞에 있습니다. 선악과도 내 앞에 있습니다. 오늘도 정직하게 나를 돌아볼 때 내 손을, 내 마음을 제어하기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새벽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그렇게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정직한 영과 마음으로 새롭게 되어 진리의 말씀을 향하여 손 내밀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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