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12월 1일 큐티설교(계 7:1-17)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
12월 1일 큐티설교(계 7:1-17)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설교일 | 2019-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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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마음을 내비치고 있는 책입니다. 외견상으로 세상의 죄와 악인들에 대하여 정확한 공의와 잣대로 심판하고 재앙을 쏟으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지만 안으로는 죄악된 세상을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깊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요한계시록을 읽는 재미에요. 오늘 본문에서도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잘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전 장인 6장에서는 세상을 향해 진노하시고 재앙을 쏟아부으시는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모종의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6장에 소개된 그 재앙들이 우리 현실 속에 펼쳐진다고 한다면 굳이 그 재앙과 징벌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그것을 보고 두려워 떨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게 될 고통과 낙담을 아시고 그들을 배려하는 장치를 친히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4장과 5장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하늘 보좌를 보여 줌으로써 요한만이 아닌 모든 백성들도 하늘 보좌에서 세상의 광경을 보도록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하늘 보좌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아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당부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하늘 전망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전망대에 올라가는 사람은 세상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위로는 일곱인 재앙에서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시무시한 일곱인 재앙에 실족하지 않도록 재앙을 조절하시고 또 그 재앙이 어린 양에게 위탁된 재앙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심으로 백성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이렇게 거칠고 공의로운 재앙 속에서 우리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질문과 대답의 형식을 빌려 보다 직접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의 문제를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렇게 맹렬한 것이라면 그 진노에서 살아남을 자가 과연 누구겠는가 라고 하는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144,000명이라는 큰 무리를 제시하셨습니다.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은 이것입니다.
내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백성의 문제는 내가 직접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백성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배려의 마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너무도 잘 알고 계세요. 우리가 얼마나 조그만 사건에도 낙담해서 하나님 없는 자처럼 살아갈지, 휘청거릴지 아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 우리를 내버려 둘 수 없어 하나님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환경과 세상에서 들리는 흉흉한 소리와 현실적인 역경 앞에 쉽게 좌절하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 혼자 외로운 영적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외딴 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살다 보면 홀로 남겨진 기분을 느낄 수도 있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엘리야도 고백하길 오직 자기만 남은 것 같다고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오직 자기 혼자 그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고백했어요. 그런데 여러분, 과연 그러냐는 거예요?
정말 여러분 혼자서 그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냐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말고 또 있대요.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주셨어요. 그처럼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남겨주신 자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144,000명이에요. 허다한 무리입니다.
여러분, 천상에 승리한 백성들이 많은 민족과 나라로 구성된 것을 보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온 인류를 향한 구령의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선교에 대한 좁은 안목을 교정해 줄 것입니다. 이런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의 원수 역시 천상의 승리한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나의 이야기처럼 내가 도저히 전할 수 없는 그런 원수들이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그들 역시 그 허다한 무리 가운데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나에게 실제적인 함정을 파 놓은 그런 이웃을 향해 어떤 태도를 가지면 좋을까요? 그런 가족과 동료와 민족과 나라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보다 그들을 향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교사적인 마음으로 그들 앞에 서야 돼요. 예레미야 49장 1절부터 6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암몬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암몬의 도시와 지도자들, 그리고 백성들을 초토화 시키셨어요. 그 예레미야 말씀을 읽다보면 우리 눈을 의심케 하는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그게 어디냐면 6절 말씀이에요.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러분, 이 말씀은 암몬이 회복케 될 것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절부터 5절에 나오는 냉엄한 기소와 어두운 심판의 이미지가 새로운 소망의 이미지로 전환되었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됨의 심판과 본토 회복 과정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암몬이라는 나라를 황폐케 하셔서 포로 되게 하시는 심판을 내리시고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들을 재건하셔서 그들의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암몬에 대한 약속은 바벨론을 무릎 꿇게 한 바사 왕 고레스의 귀환 조서를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장차 도래할 메시야 시대에 모든 열방이 주께 돌아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이런 약속의 성취는 우리가 읽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어요.
여러분, 열방이 회복된다고 하는 메시지는 나와 내 가족밖에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안목을 반성케 합니다. 암몬을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심판을 기뻐하기보다 세상의 구원을 향한 선교적 마음을 가질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암몬이 영원히 멸망하는 것 같으나 곧 회복될 것이라는 이 말씀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을까요?
요나처럼 끝까지 니느웨에서는 복음 전할 수 없다고 고집 피우는 그런 마음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요? 암몬을 향한 회복의 메시지를 묵상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요? 그 말씀이 여러분의 태도를 교정하고 있습니까? 응당 그래야 됩니다. 그게 정상이에요. 세상을 향해 가질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심판을 당연시하는 정죄적 태도가 아니라 불타는 심정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일 겁니다.
누더기 인생을 불러주신 그 감격으로 또 다른 누더기 인생을 부르는 사역을 감당해야 돼요. 우리는 그렇게 범세계적인 하나님 사랑을 세상 가운데 실천하며 살아야 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데는 크고 거창한 생각이 필요가 없어요.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이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 안에서 미움받고 가정 밖으로 밀려난 가족에게 한 걸음 나아 가야 돼요. 주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다시 회복하시기를 원한다는 그 심정으로 그들을 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돌아가되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으로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조금씩 원수를 향한 우리 관심이 공동체 가운데 전이되는 거예요. 이게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생활 하다 보면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요구되는 것은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이에요. 이웃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익명성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만큼이나 지역 공동체와 더 깊은 만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데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그들과 접촉 해야 그들도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는 것을 자기 가족이 부강해지는 것쯤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오심을 채비하는 대림절의 첫 시간인 오늘이 바로 우리의 안목을 넓힐 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개인이 복 받은 것뿐만 아니라 세상 가운데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그런 간증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웃의 영역을 넓히는 수고가 따라야 돼요. 그런데 만약에 이 이것을 싫어해 가지고 자기 안에만 갇혀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결국 자기도 죽고 남도 죽게 되는 결괄를 낳게 될 거예요.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웃을 향해 열린 태도를 가지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렇게 해야만 우리나라와 교회와 가정이 건강해 질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낯선 영역을 향해 배를 띄워야 합니다.
그에 따른 수고가 물론 따르겠지만 그에 따른 면류관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 오늘 하루 주님의 일에 충성하고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번호 | 분류 | 제목 | 작성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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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 주일 | 12월 29일 큐티설교(시편 148편 1~ 14절) 온 천하 만물 우러러 | 이한솔 | 2019-12-29 |
186 | 주일 | 12월 15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 16장 10-21절) 최종 심판과 아마겟돈 | 이한솔 | 2019-12-15 |
185 | 주일 | 12월 8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12:1-17) 영적 전쟁 | 이한솔 | 2019-12-08 |
184 | 주일 | 12월 1일 큐티설교(계 7:1-17)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 | 이한솔 | 2019-12-01 |
183 | 주일 | 11월 24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 2장 8-17절) 환란은 견디고 잘못은 돌이키고 | 이한솔 | 2019-11-24 |
182 | 주일 | 11월 10일 큐티설교(시편 140편 1-13절) 비방의 소리조차 들어주시는 주님 | 이한솔 | 2019-11-10 |
181 | 주일 | 11월 3일 큐티설교(시편 135:1-21)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차광욱 | 2019-11-03 |
180 | 주일 | 10월 27일 큐티설교(유다서 1:17-25)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라 | 강주헌 | 2019-10-27 |
179 | 주일 | 10월 13일 큐티설교(빌립보서 1:1-11) 복음의 동역자 | 강주헌 | 2019-10-13 |
178 | 주일 | 10월 6일 큐티설교(여호수아 21장 20-45절) 흩어진 레위인들이 받은 은혜 | 정지원 | 2019-10-06 |
177 | 주일 | 9월 15일 큐티설교(여호수아 8:30-35) 여호와를 위한 제단 | 차광욱 | 2019-09-15 |
176 | 주일 | 9월 8일 큐티설교(여호수아 5장 1-12절) 길갈에서의 순종 | 김태선 | 2019-09-08 |
175 | 주일 | 8월 25일 큐티설교(에스겔27:26-36) 두로의 교만함 | 김태선 | 2019-08-25 |
174 | 주일 | 8월 18일 큐티설교(에스겔 23장 22-35절) 어리석은 오홀리바 | 권도완 | 2019-08-18 |
173 | 주일 | 7월 28일 큐티설교(에스겔 12:17-28) 임박한 종말 | 권도완 | 2019-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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