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12월 15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 16장 10-21절) 최종 심판과 아마겟돈
12월 15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 16장 10-21절) 최종 심판과 아마겟돈설교일 | 2019-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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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9.11 테러 사건이 있은 후 노스트라다무스 신봉자들은 그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행시로 미래를 점친 그의 예언이 그 사건과 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죠. 그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신의 도시에 거대한 번개가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두 형제는 혼란에 빠져 무너질 것이며 그동안 요새는 견뎌낼 것이다.
여러분, 그들이 이걸 풀어내기를 신의 도시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뉴욕을 말하고 거대한 번개가 떨어지는 건 여객기의 폭파를 의미하며 두 형제는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을 말하고 또 요새는 미국의 국방부인 펜타곤을 의미하는데 요새가 견뎌낼 것이라는 말처럼 정말로 펜타곤이 붕괴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어떻습니까? 이렇게 끼워 맞추니까 그럴듯하죠?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9.11 테러 이후에 노스트라다무스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었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것 같지만 당시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어요. 여러분, 이처럼 계시록에 나오는 예언도요. 이런 식으로 끼워 맞추면 얼마든지 끼워 맞출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그런 식의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세대주의자들과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그런 식으로 많이 해석해요. 우리가 읽은 본문도 그렇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해요. 그래서 그런 식의 해석을 자꾸 들어보면 그럴듯해 보여서 혹하는데 사실은 엄청난 신앙적인 위험성이 그 안에 내포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걸 조심해야 돼요.
합리적인 걸 좋아하는 현대인들은 그들을 미혹하는 사탄의 계략에 자주 빠지게 됩니다. 오늘 이전 본문인 15장 2절부터 4절 말씀을 보면 믿음을 지킨 자들이 마지막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마지막 날 심판이 임하기 전에 구원받은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을 찬송한 거예요.
그리고 이어서 5절 말씀을 보면 하늘의 증거 장막이 열리면서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어디서부터 나왔냐 그러면 성전으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여러분, 계시록에는 크게 세 가지 재앙이 나오는데요. 그 첫 번째가 일곱 인의 재앙, 두 번째는 일곱 나팔의 재앙, 세 번째는 일곱 대접의 재앙입니다. 하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오는데 네 생물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각각 나눠준 거예요.
그러고 나서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게 되는데 일곱 대접의 재앙이 마칠 때까지 성전 안에 들어갈 자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일곱 대접의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는데요. 이것은 마지막 재앙이 하나님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서 재앙이 마칠 때까지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에요. 여러분, 일곱 나팔의 재앙과 일곱 대접의 재앙을 보면 유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대상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적용의 범위는 완전히 다른 거예요.
일곱 나팔의 재앙을 보면 3분의 1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은 지역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곱 대접의 재앙은 지구 전체에 일어나는 재앙을 뜻해요. 그리고 일곱 나팔의 재앙에는 바벨론, 즉 사탄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일곱 대접의 재앙에는 바벨론에 대한 심판, 즉 사탄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일곱 나팔 재앙의 목적은 회개에요.
이 땅에 재앙이 임한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살길이 열리는 겁니다. 하지만 일곱 대접 재앙의 목적은 회개가 아니에요. 일곱 대접 재앙의 목적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그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불신자들과 사탄을 향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은 그중에서도 다섯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의 재앙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다섯 번째 대접의 재앙이 10절과 11절에 나오는데 다섯째 천사가 대접을 어디에 쏟았다 그러죠? 짐승의 왕좌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모든 악의 축, 즉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탄에게 하나님이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짐승의 왕좌에 다섯 번째 대접이 쏟아 진데요. 그래서 결국 그의 나라가 어두워지고 완전히 멸망 당할 것이라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자기 혀를 깨물고 죽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죽고 싶어도 그들은 죽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게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 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럼에도 그들이 어떻게 한다 그러죠?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는다 그래요. 그리고 이어서 12절부터 16절은 여섯 번째 대접의 재앙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요. 이번에는 이 대접이 큰 강 유브라데에 부어집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죠?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 된다 그래요. 13절 말씀을 보면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오는데 성경은 개구리를 부정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 부정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어디에서 나오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들의 입입니다. 거기서 세 더러운 영이 나오는 거예요. 이들은 이적을 행하고 나서 사람들을 끌어모습니다.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장소에요. 그러다가 유브라데 강이 마르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십자군 전쟁이나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이나 3차 대전쯤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다 잘못된 해석이죠.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영적 전쟁을 뜻합니다.
그다음에 일곱 번째 대접의 재앙이 17절에서 21절에 나오는데 이번에는 대접이 어디에 쏟아지냐면 공중에 쏟아집니다. 그랬더니 큰 음성이 성전 보좌로부터 나왔어요. 그게 무슨 음성이냐면 되었다는 거예요. 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다 이루었다’ 그랬는데 그것처럼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의 재앙이 쏟아지는 그때 보좌로부터 ‘되었다, 다 이루었다, 모든 심판이 끝났다’라고 하는 큰 음성이 들리게 될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와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 몇 해 전 아이티에 큰 지진이 있었죠. 그때 죽은 사망자 수가 23만 명 정도 됐다 그래요.
그리고 역사상 가장 큰 지진은 1556년 1월 23일에 중국의 산서성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그때 83만 명 정도가 죽었다 그럽니다. 그런데 여러분, 역사의 마지막 때에도 큰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것은 지구 특정 어느 지역이 아니라, 즉 아이티나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이 아니라 온 세상에 동시다발적으로 지진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진노의 포도주를 받게 되고 만국의 성들이 무너지고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내릴 거라고 하는데 여러분, 한 달란트의 무게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34kg이에요. 34kg. 그 34kg 하는 우박이 하늘에서 내린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전 우주적인 재앙이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한대요.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따져보면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회개할 수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회개라는 것도 다 때가 있기 때문이에요. 아무 때고 할 수 있는 게 회개가 아닙니다. 다 때가 있어요. 마지막 날 심판이 시작되면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누군가 지금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 아직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아직 은혜의 때가 남아있다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면 마지막 심판이 임하는 것이죠. 그래서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펴본 일곱 대접의 재앙은 전 우주적이고도 불신자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총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사탄에 대한 종말론적인 심판이기도 해요. 사탄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너무 고통스러워 가지고 혀를 깨물어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 없는 그 무서운 심판이 세상 마지막 날에 이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 누가 이 심판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역사의 마지막 날 하나님이 진노의 일곱 대접이 쏟아질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 그런데 참으로 다행인 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예외입니다. 그 가운데서 보호받는 거예요.
계시록 9장 4절 말씀을 보면 일곱 인의 재앙은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임한다 그래요. 오직 이마에 인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 해를 당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16장 2절 말씀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이런 재앙이 임한다는 거예요.
인침을 받은 사람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어린양의 피로 보호받았기 때문에 어떠한 재앙도 받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을 건드릴 수 없어요.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재앙에서 철저히 보호받게 됩니다. 역사상 가장 처참한 현장은 아마도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였을 겁니다. 거기서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당했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그 수용소에 갇혀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어느 날 간수가 와서 보석금 10억을 내면 지금 당장 풀어주겠다고 하는데, 해방 시켜 주겠다고 하는데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10억이면 자유의 몸이 되는 겁니다. 이 10억 벌기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걸 달라고, 그럴 순 없지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냥 죽어 가시겠습니까? 10억이 없다 그러면 모르겠지만 10억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있다고 한다면 100억이라도 내겠죠. 그래서 자유의 몸이 되겠죠. 그런데도 그 10억 움켜 지고 그냥 그대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10억원의 가치보다 더 크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왜냐하면 수용소는 거기서 죽으면 그냥 그대로 끝이에요.
죽으면 그 고통에서 바로 해방되는 겁니다. 그렇게 그 고통을 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종말론적인 심판이라고 하는 건 죽어도 끝나지 않는 겁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거예요. 혀 깨물고 죽으려고 해도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수용소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그런 고통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 은혜는 10억 원의 가치보다, 아니 100억 원의 가치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말할 수 없는 은혜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다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죄 사함 받았고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무서운 재앙에서 자유를 얻었고 유리 바닷가에 서서는 영원무궁토록 주님을 찬미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5절의 가사는 이래요.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묵상해 보니까 뭘 어떻게 할 수 없던 겁니다.
그래서 내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친다고 그렇게 고백했던 거예요. 여러분, 주님께 받은 은혜가 그렇게 큰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역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무릎을 바치고 찬송의 입술을 바치고 봉사하고 흘리는 땀방울을 바치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예배를 바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그런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대림절 세 번째 주간을 보낸다면 우리 안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번호 | 분류 | 제목 | 작성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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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 주일 | 11월 24일 큐티설교(요한계시록 2장 8-17절) 환란은 견디고 잘못은 돌이키고 | 이한솔 | 2019-11-24 |
182 | 주일 | 11월 10일 큐티설교(시편 140편 1-13절) 비방의 소리조차 들어주시는 주님 | 이한솔 | 2019-11-10 |
181 | 주일 | 11월 3일 큐티설교(시편 135:1-21)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 차광욱 | 2019-11-03 |
180 | 주일 | 10월 27일 큐티설교(유다서 1:17-25)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라 | 강주헌 | 2019-10-27 |
179 | 주일 | 10월 13일 큐티설교(빌립보서 1:1-11) 복음의 동역자 | 강주헌 | 2019-10-13 |
178 | 주일 | 10월 6일 큐티설교(여호수아 21장 20-45절) 흩어진 레위인들이 받은 은혜 | 정지원 | 2019-10-06 |
177 | 주일 | 9월 15일 큐티설교(여호수아 8:30-35) 여호와를 위한 제단 | 차광욱 | 2019-09-15 |
176 | 주일 | 9월 8일 큐티설교(여호수아 5장 1-12절) 길갈에서의 순종 | 김태선 | 2019-09-08 |
175 | 주일 | 8월 25일 큐티설교(에스겔27:26-36) 두로의 교만함 | 김태선 | 2019-08-25 |
174 | 주일 | 8월 18일 큐티설교(에스겔 23장 22-35절) 어리석은 오홀리바 | 권도완 | 2019-08-18 |
173 | 주일 | 7월 28일 큐티설교(에스겔 12:17-28) 임박한 종말 | 권도완 | 2019-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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